지난 여름 방학 내내 아빠랑 수학공부를 했던 딸. 방학 마무리 하면서 아빠랑 보낸 시간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St. Peters girls에 장학금 시험 신청을 했었다. 사실 이미 Loreto도 작년부터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니고 있기 때문에 꼭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별로 없었고 워낙 애들레이드 Top School이라 소문이 난 곳이어서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없이 성적표 나오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실력 확인이나 좀 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한 시험이었다. 2월 초에 시험 보고 3월 초에 결과가 나왔는데 얘가 시험을 꽤 잘 봤는지 75% 오퍼가 와서 우리 부부는 한 일주일 완전 멘붕이었다. 처음 전화 받았을 때는 어쨌든 아이가 시험을 잘 봤으니 기분이 좋았다가 바로 '어...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옮기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도 없는지라 짧은 시간 안에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려니 머리가 보통 복잡한게 아니었다. 게다가 어느 한 쪽이 경제적 이득이 매우 크다면 그쪽으로 쏠렸을텐데 장학금을 받고 그쪽 학교로 옮긴다면 지금보다 1년에 2500-3000불 정도 학비가 줄어드는 거라 그 정도 비용 차이로는 그게 모든 결정의 Top Priority가 되지도 않았다. 

급하게 교장선생님하고 인터뷰 잡아 만나고, 예전 아이 담임 선생님이었던 Fiona, Hattie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도 들어보고, Kimberley (Head of Learning and innovation) 만나서 앞으로 아이가 옮기지 않고 이 학교에 있다면 Academic Support는 어떻게 해 줄 수 있는지 얘기도 나누고... 폭풍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꽤 기분 좋았던 일은 지금 학교에서 모두 예원이를 잃고 싶어하지 않다는 마음을 모두 아주 강력하게 표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좀 오버해서 표현하자면 'Loreto가 잃지 말아야할 인재' 쯤으로 생각해주니 어쨌든 기분은 괜찮았다. 두 학교의 장 단점을 하나씩 나열해보니 학교를 옮겼을 때의 가장 큰 좋은 점이란 '애들레이드 Top 사립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라고 남들한테 뻐길 수 있다는 그거 하나더라. 지금 학교는 프리스쿨부터 따지면 2살 반 때부터 이 캠퍼스에서 쭉 교육을 받은 곳이라 아이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장소일 것이고 정이라면 정도 든 곳이라 대뜸 옮겨야겠다는 마음이 안 들었다. 예원이 2,4 학년 담임 선생님이 뭔가 문제가 있거나 환경 변화가 꼭 필요한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여기서 너무 잘 하고 있는 아이를 굳이 옮기는게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을 하며 Loreto에 남아 있을 때의 장점들을 나열하다보니 100% 장학금 오퍼를 받았다고 해도 아무 고민없이 깔끔하게 옮겼을까? 싶은 생각도 계속 들었고... 어쨌든 양 손에 St. Peters와 Loreto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

예원이는 50:50 정도로 옮기고 싶어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첫째는 자기가 잘 해서 얻어낸 장학금을 그냥 포기하는게 좀 아깝다는 것. 둘째는 어쨌든 St Peters니까...였다. 암튼 이런 머리 터지는 고민의 과정을 한달 반이 지난 이 시점에 전부 적을 수는 없고 결론은 아이와 우리의 논의 끝에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좋았던 건 예원이가 뭔가 성취했다는 기분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4학년 때 Loreto 장학금 시험을 볼 때는 이번처럼 미리 공부하는 과정이 있었던 건 아닌데 영어 시험을 워낙 잘 봐서 운이 좋게 받았었지만,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방학 기간 한달반을 아빠한테 야단도 맞아 가며 본인도 힘들게 공부한 후에 봤던 시험이라 공부는 헛 하는게 아니라는 것,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본인이 느꼈나보다. 그런 성취감을 느껴보는 것도 매우 좋은 경험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반전은 성적표를 확인해보니 수학 성적도 좀 오르긴 했지만 이번에도 방학 내내 수학 공부만 하느라 영어는 공부는 커녕 맘껏 책도 못 읽었음에도 역시 꼭대기에 있는 영어 성적이 평균을 매우 높였다는 것.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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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블로그에 기록을 해 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일기장에는 몇줄 감상을 적어뒀었는데...

난 한국영화가 오스카에서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상을 받는 날을 내 눈으로 직접 볼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워낙 잘 만든 영화라 이번에도 국제영화상은 당연히 받고 각본상을 과연 줄까? 의심하고 있었는데 예원이 픽업하러 갔는데 엠마가 만나자마자 본인 핸드폰 뉴스 업데이트 앱에  South Korean movie Parasite가 역사를 다시 썼다는 뉴스 알림이 떴다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했더니 무려 4관왕인데 그게 각본 감독 작품상까지 싹 다 쓸어담았다고 해서 정말 엄청나게 기분 좋게 놀랐다. 사실 일면식도 없는 남의 일인데 (아무리 내가 봉준호 감독의 오랜 팬이라고는 하나...)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아직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한때 업으로 삼아도 좋겠다 생각하고 고민했던 분야의 일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기분 좋아서 아카데미 수상 기념으로 극장에 가서 다시 한번 봤다. 아마 내 생에 남의 일로 가장 흥분했던 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나 사실 국뽕 꽉꽉 채우는 글도 컨텐츠들도 진짜 극혐인데... 이 시점에선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분들... 그 분들이 지금 한국을 보면 참 좋아라 하시겠다. 사회 이곳 저곳 모순도 많고 뜯어 고치고 뒤집어 엎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는 그런 나라지만 그 분들 살던 그 시절, 그냥 내 나라 내땅에서 우리가 알아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것 하나도 맘대로 안 되던 그때 목숨바쳤던 그 양반들이 지금을 보면 그래도 참 좋아라 하시겠구나.... 문화의 힘이 센 나라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던 김구 선생님의 글도 괜히 머리속을 한번씩 맴돌고 그렇다.

어쨌든 기분좋은 뉴스 덕에 며칠 흥분된 날들이었다. 아카데미 수상 기념으로 극장에 다시 올라왔길래 기념삼아 다시 한번 보고 왔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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