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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든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어버린 2020년이 가고 2021년이다.

숫자 하나 바뀐다고 갑자기 이 모든 상황들이 나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어쨌든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놓이는 그런 시절이다. 가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지겠지..... 그런 마음.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던 것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던 일들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남호주는 팬데믹 이후 정말 상황이 양호한 편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community transfer case가 몇개만 나와도 바로 lock down 해버리니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마음이니 한국도 그렇고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싶다.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는 이 시기가 언제나 끝이 날지 모르겠다. 백신은 나왔다지만 우리 모두의 일상을 다시 찾으려면 올 연말이 가까워야 가능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빨리 이 모든 것들이 끝났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가족이야 팬데믹으로 딱히 다른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었기도 하거니와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사실 세 식구가 결혼 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나름 좋기도 했었다. 흠... 엠마는 총 3주 정도 온라인 수업 했는데 그게 좀만 더 길어졌으면 답답해 몸부림치는 애 때문에 또 어땠을지 모르겠다. 우리 딸은 학교를 참 좋아해. 학년 올라가면 좀 달라지겠거니 했는데 한국으로 치면 중2인 8학년이 되어서도 학교 가는 게 더 좋아서 주말이 싫다는 얘를 어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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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로 인한 개인적 부작용... 장 보는 거 외엔 거의 돌아다닐 일이 없이 집콕에 끼니는 엄청 잘 챙겨 먹으니 체중이 자꾸자꾸 늘어서 안되겠다 싶어 지난 11월 말부터 헬스랑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은 한국 떠난 이후로는 처음 랩 스위밍을 하는 거라 처음에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애 데리고 다니면서도 그냥 물 놀이나 했지 랩스위밍은 정말 한번도 안했던지라 첫 날 자유형 25미터 하고 숨차서 진짜 딱 죽는 중.... 25미터 갔다가 잠깐 쉬고 다시 돌아오는 25미터는 결국 중간에 멈춰버렸었다. 역시 안하면 아무리 열심히 배웠던 것도 다 말짱 꽝이다. 나름 접영까지 전부 마스터한 실력이었건만... 이젠 접영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원이가 엄마에게 접영을 다시 가르치겠다며 벼르고 있으나 거부하고 있음. 그래도 며칠에 한번씩 했더니 그나마 자유형 배영 평영을 어느 정도는 오고 가고가 가능해지긴 했다. 뭐 이 나이에 엄청 수영을 잘 해보겠다는 건 아니고 그나마 좋아하는 운동이니까 하고 나면 기분은 참 상쾌하고 좋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에 따라 수영은 신체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헬스도 2달 넘게 꾸준하게 하고 있다. 식단은 간헐적 단식을 할지 저탄수 식단을 할지 생각하다가 탄수화물의 노예인 내게 저탄수는 너무 비 현실적이며 중간에 무조건 포기하게 될 게 분명하여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는데 먹고 싶은 걸 막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서 장기간 유지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음식 섭취가 가능한 시간에는 먹고 싶은 건 딱히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고 있어서 드라마틱한 체중의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암튼 오랜만에 꼬박꼬박 운동 챙겨서 하니까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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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호주 이민 17년 차. 와.... 진짜 믿어지지 않네. 시간은 훌훌 날아가고 있구나...

며칠 전에 네이버에서 뭔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애들레이드에서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는 어느 젊은 여자분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포스팅 몇개 읽어보다가 우리 이민 준비하던 15-6년 전이 너무 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아련해졌달까. 엄청난 꿈과 환상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타국 땅,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도시에 정착하는 일이 그리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비자문제, 자꾸만 바뀌는 이민법, 비루한 영어 실력... 그외에도 영주권도 없는 불안정한 생활의 와중에 자잘하게 들어오는 생각하지도 못한 태클들... 진짜 버티기 쉽지 않은 정착 과정이었다. 그나마 이만큼 오는데까지 오롯이 우리 둘의 힘과 존버 정신으로 가능했으므로 대단한 거 아니어도 이만큼 자리 잡은 거 스스로 좀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래... 시간이 그냥 훌훌 날아가는 것 같지만 그 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참 많이 다른 자리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한발 한발 조금씩 나아가다보면 어딘가 닿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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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주로 집이나 플레이 카페, 공원에 데리고 모여 플레이데이트를 했는데 7학년 되더니 그 패턴도 꽤 달라졌다. 올해는 COVID-19 때문에 첫 방학에는 집에만 콕 박혀 있었지만, 남호주 상황이 좀 나아진 뒤로는 주로 쇼핑몰에서 시간 정해 만나 엄마들은 근처 카페에서 차 한잔씩들 하고 기다리고 애들은 애들끼리 주변을 돌아다니며 쇼핑도 하고 이것저것 군것질도 하면서 놀거나, 저녁 먹으러 다같이 밖에서 만나 노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어제도 만나서 저녁 먹고 실컷 놀다 헤어짐. 다음 주에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간 미아랑 만날거라고 하니 이번 방학 catch up은 거기까지만... 2주 반동안 세번이면 충분하다 딸아... 

term 1,2 성적표가 나왔는데 이번 semester도 잘 받아왔다. 9과목 중에 A+가 5개, A가 3개, A-가 한개. PE가 A-였는데 term2에 축구를 하다보니 좀 힘들었단다. 난 예전에 정말 체육 못했었는데 얜 타고난 운동신경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수영이랑 넷볼을 열심히 시켰더니 나만큼 엉망은 아니다. 본인은 어쨌든 B가 아니라 A라 천만 다행이라나. ㅋㅋㅋ 오히려 그것보다 과학을 A+ 못 받아 아쉬우시다길래 3,4학기에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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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가 다시 확진자가 폭발하고 있어서 거긴 다시 lock down에 들어갔다는 얘길 들으니 남호주도 다들 사람들이 너무 느긋하지 않나 싶은 걱정도 들고 그렇다. 여긴 확진자가 안 나온지 꽤 지났고 며칠 전에 3명 나온 건 인도에서 입국해서 다른 도시에서 격리중인 사람들이라 (예를 들어 멜번에서 격리 중이라도 확진자들이 애들레이드 사람들이면 남호주 확진자로 집계된다) 현재 상태는 제법 안전하다고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한 곳만 삐끗해도 순식간에 퍼져서 사실 좀 걱정이다. 

3개월 넘게 세식구가 모여 같이 저녁을 매일 먹으니 나름 메뉴도 공들여 준비하고 아무래도 저녁 먹는 시간도 조금 늦어지고 그랬는데 그러다보니 다들 살이 쪄서 누구 말마따나 세 식구 모두 '확찐자'가 되어 버렸다. 예원이는 게다가 수영장도 닫고, 학교에서 하던 스포츠들도 다 올스톱이라 운동을 안해서 애가 아주 튼실해졌다. 식욕은 왕성하고 호르몬은 폭발하는 시기에 있으니... 이번 달부터 수영 시작해서 열심히 좀 하고 먹는 것도 좀 조절을 시키려는 중. 다시 시작하고 첫날 다녀오더니 오랜만에 수영하니까 평소에 warm up으로 하던 정도도 힘들더라나. 트레이닝 시작할 때 400m IM이나 자유형으로 웜업을 하는데 그거 하고 숨이 헥헥 차더란다. 열심히 체력을 끌어올려보거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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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간이 가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은 이 계절이 지나면 좀 따뜻해지나 싶다가 무지막지하게 더운 여름이 또 올테고... 그 계절을 견디다 보면 다음 해가 되어있거나, 혹은 아이 학교 학기에 맞춰 내 시간도 같이 흘러가다 보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가 있거나 그런 식이다. 뭐 한게 있나 싶은데 한 해가 훌렁훌렁 지나가 버린다 싶으니 어느 순간에는 매우 상투적인 비유지만 정말로 손에 쥐고 있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고 막상 손에 남은 건 얼마 없는 기분이다. 결국은 매일매일 열심히 사는게 제일 중요한데 아주 가끔이지만 괜히 멘탈이 저 바닥으로 내려갈 때도 있고... 40대 중반에 사춘기도 아니고 왜 이러나 싶다가 맞다... 갱년기가 멀지 않았네... 그랬다. 뭐 세월 가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그걸 어떻게 쓰는지는 모두 다르겠지만. 쳐지지 말고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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