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오랜만에 뮤지컬 관람. 팬데믹이 오면서 한 1년은 여기도 모든 공연이 다 캔슬이었고 슬슬 공연이 재개되었을 때도 사람 많은데 가기 겁나서 쭈욱 공연장 방문은 피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작년 12월이었는지 올 1월이었는지 암튼 거의 반년 전에 프리세일 오픈하자마자 예약을 했는데, 우리 따님 수요일 저녁 일정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라 수요일 저녁 Biology 수업을 반 빠지고 가야해서 예원이가(우리 말고 따님 혼자) 걱정이 태산이었다. 공연 보는 거 그렇게 좋아하는 녀석이 계속 궁시렁 궁시렁... ㅋㅋㅋ 헌데 다행히 다음 주가 시험이라 수업시간에 새로 배우는 내용이 없어다며 공연 보러 가기 전에는 마음의 짐을 내려 놓아서 덩달아 나도 마음이 좀 놓였었다.
뮤지컬은 정말 기대이상으로 너무 훌륭해서 공연 보고 나오면서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약간 기분 좋게 흥분한 그 상태로 나왔다. 아... 이 기분 얼마만이던가. 뮤지컬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번엔 보는 내내 따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채 잔뜩 상기되어서 같이 환호하면서 보는데 이 녀석 또 한뼘 자랐구나 싶어서 기특하기도 했다.
SIX the Musical은 헨리 8세의 여섯 와이프들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사실 75분짜리 짧은 공연이고 여섯명의 와이프들이 나와 노래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까지가 내가 알던 정보의 전부였던지라 생각보다 별로면 어쩌나 싶은 우려가 없지 않아 있었는데 전!혀! 일단 이 뮤지컬은 스케일이 큰 뮤지컬이 아니다. 무대도 작고 세트도 그냥 밴드 공연을 위한 무대에서 연주자 넷(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여섯명의 배우 총 열 명이 75분동안 보여주는 공연이고 연주자들까지 모두 여성들이다. 구성부터가 페미니즘 베이스의 뮤지컬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루엣만 보이는 역광 조명을 받으면서 여섯 배우가 막을 열고 처음 등장하며 "Divorced, Beheaded, Died. Devorced, Beheaded, Survived,"를 외치는 공연의 첫 시작부터 완전 푹 빠져들어서 봤다.
여섯명의 왕비들이 각자의 사연을 노래로 들려주면서 누가 더 기구한 인생을 살았는지 관객들이 평가하고 최종 승자를 리더로 뽑자는 걸로 시작하는데 당연히 공연 말미에는 그들이 헨리8세의 와이프, 역사의 조연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되찾아 모두가 'leading ladies'가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마무리 된다. 각 노래의 가사들도 (물론 완벽하게 다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영어 가사가 비교적 쉽게 쓰여져 있다) 참 재기발랄하고 발칙해서 진짜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이 뮤지컬이 얼마나 젊은 작품인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캠브리지 대학생 두명이 극작, 작사, 작곡을 다 했다는데 진짜 대~단하다. 젊고, 재기발랄하고,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운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끝날 때는 75분이 아니라 한시간도 안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한국에서도 헤드윅 같은 작품이 인기가 많아서 그 계통 팬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실은 나 혼자 각 배역마다 우리나라 배우, 가수들 가져다 붙여보는 재미도 쏠쏠했음. 물론 난 요즘 한국에서 활동이 왕성한 뮤지컬 배우들을 잘 몰라서 내 경우는 대부분 옛날 배우들로다가... ㅎㅎㅎ

피날레 무대에서 다들 동영상을 찍길래 나는 소심하게 사진 한 컷 찍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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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빈부 격차로 만들어진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계층과 차별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남일동에 이사온 주해 모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깝지만 나는 그런 선입견에서 자유로운가 곱씹어 반성해 보았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좀 다른 문제인데 아이 키우면서 아이가 노출되는 환경에 이런 종류의 선입견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의 화자인 홍의 부모의 모습은 답답함과 짠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내 던져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는 소시민의 생존본능으로 읽혀지기도 하니 그들의 이기적이고 표리부동한 말과 행동을 마냥 비난하지도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거지. 이게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가슴 아픈 자화상인가 싶기도 해서 마음이 내내 답답했었다. 어쨌든 스스로에게 그것을 마냥 어쩔 수 없는 생존본능이라 정당화하고 살진 말자. 자꾸자꾸 자각하고, 깨어 있으려 노력하자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 소유욕,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심리 같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최소한 지킬건 지키고, 다른 사람 인생도 한번 쯤은 마음 쓰며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그 밤, 우리 집을 올려다보던 어머니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왜 들어갈 생각은 않고 하염없이 집을 바라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걸까요.
오랜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나는 그 밤 어머니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손안에 쥐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그 집을, 그럼에도 결코 포기가 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어머니는 두려운 마음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개인적으로는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쓰디쓴 약을 한 주먹 물도 없이 삼켜버린 느낌이었는데 묘하게 찝찝함과 씁쓸함과 동시에 쾌감이 함께 느껴지는 특이한 기분이었달까. 잘 만든 블랙코미디 단편영화를 한편 보았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헌데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11회 수상작품집에서 본 기억인데 내 기억이 틀렸나? 다른 책에서 읽은겐가? 연달아 2년을 같은 소설이 받을 수도 있는건지 내 기억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네. 다른 작품들도 좋았던 것 같은데 책을 반납해 버려서 뭐라도 끄적여 보려니 생각 나는게 없다.

 

고요한,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 첫 수록작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했던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읽은지 한달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입안 가득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개인적으로 레어 못 먹음) 나는 그 비릿한 느낌이 맴도는 기분이라 매우 불쾌해진다. 전반적으로 대부분 작품들에서 작가가 인간관계를 다루는 방식에 다 조금씩 비슷한 정서를 느꼈는데 일부러 이런 작품들을 모아 책을 엮은 건지 이 작가의 정서가 전체적으로 그런지는 전에 읽어본 책이 없어서 모르겠다. 어릴 때는 이런 정서의 책도 꽤 좋아했는데 나이 먹어가면서 아무래도 사람이 좀 변하는지 그다지 '호'는 아니다. 그래도 8편 모두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고도원, <줌인>

자경단식 복수 스릴러 굉장히 안 좋아하는데 이게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보통 이런 류의 영화나 책은 일단 자경단식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품 속 빌런을 천하의 쓰레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읽고 보는 내내 나는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쁜 놈이면 그냥 막 죽여도 되는거야? 다 정당해? 법이 처벌을 못 해서 직접 해치면 그건 범죄가 아니야? 기타 등등.... 암튼 여러모로 내 취향은 아닌 연쇄살인범의 살인에 서사를 부여하는 뭐 그런 소설이었다. 아주 별로였음.

 

미셸 리치먼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혼>

헐.... 분량은 소설 치고 엄청 긴데, 무지 재미없다. 읽기 시작한게 아까워서 끝까지 읽었는데 끝을 읽고 책 집어 던질 뻔 했음. 모르고 다시 빌려올까봐 적어두는 중.

 

 
루 버니, <노벰버 로드>

로드 무비 한편을 보는 느낌의 소설. 무책임한 알콜 중독 남편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린 두 딸과 길을 나선 여자와 케네디 암살 사건에 자신도 모르게 연루되어 도주 중인 남자가 우연히(라고 할 수는 없나?) 함께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위에 언급한 책 보다는 훨씬 나았음.

 

박민정, <미스 플라이트>

승무원이던 딸의 갑작스런 자살, 그 죽음의 진실을 쫓고자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결국 끝까지 유나가 왜 꼭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군 장성이던 폭력적이고 소통이 불가한 모습으로 군림하던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엇나가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본인의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유나에겐 좋은 엄마도 친구들도 있었어서 살짝 갸우뚱 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긴 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또 한번 나는 '사회의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정명섭, <조선의 형사들>

의외로 시간때우기로 읽을 때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읽기를 즐기는 편이다. 한때 전공자 입장에서는 때때로 이걸 어떻게 이렇게 상상해서 이야기로 만들었을까 하는 식으로 감탄하게 된달까?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으로 두 화가의 이야기를 너무 매혹적으로 만들어 냈던 '바람의 화원' 같은 작가의 '뿌리 깊은 나무'도 그랬고, 정조가 암살된 것이라는 썰을 소설로 풀어내었던 '영원한 제국'은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후로 몇번이나 다시 읽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그 정도로 나를 감탄시키진 않았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이런 종류 책 읽는게 오랜만이라 훌훌 지루하지 않게 읽어 넘겼다.

 

천선란,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이번 달에 읽었던 책 중 제일 기억에 남는게 바로 이 작품. 일단 작년에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던 '천개의 파랑'을 쓴 작가라 기대가 있었는데 충분히 그 기대치를 충족하고도 남았다. 누구도 외롭게 두지 말라는 책 전체의 메세지가 마음에 깊게 울렸다. 기억해 두고 싶었던 구절이 더 있었는데 지난 번에 그냥 반납을 해 버렸다. 다시 빌려다 읽을 책.

 

'그래서 좋아요. 선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요. 균형이라 믿었던 것들을 기울여 바라보면 그곳에서 중심 잡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보이잖아요. …'
-p. 164

 

Michelle Zauner, <CRYING IN H MART>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언급되는 것 같길래 빌려다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리뷰에서 봤던 것 같은 종류의 감동은 전혀 없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하는 여러가지 행동들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기도 하고, 나와 우리 엄마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읽었다. 실은 저자의 모녀 관계에 이해가 잘 안되는 면들도 꽤 많았다. 또 사춘기 시절 어그러진 사이가 다 회복 되기도 전에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그러다보니 어쩌면 저자가 더욱 그나마 엄마와 함께 나눴던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게 음식이라 그 것을 엄마와의 기억을 되새기는 매개체로 여기게 된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부모의 back ground culture가 서로 다를 경우에는 우리 집처럼 가정에서는 '한국' 나가면 '호주' 이런 케이스랑은 또 많이 다를텐데 어떤 경우던 결국은 그 balance를 어떻게 잡아 나가는지 아이들 스스로의 노력과 부모의 서포트가 잘 조화되면 오히려 사회에서 더 풍성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우리 딸도 Mother Culture랑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으니 공감되는 부분이 좀 있지 않을까 싶어 빌려왔고 예원이가 먼저 읽었었는데 따님은 한국 음식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가지 한국 얘기들이 많이 나와서 재미읽게 읽긴 했지만 우리의 가족 관계랑은 너무 달라서 별로 공감하며 읽히진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긴 했다고 한다. 읽다가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이 엄마는 좀 특이한 엄마네요'하고 얘기한 적도 종종 있었음. 그러고 보니 이제 한국 가 본지 정말 오래라 다시 가면 처음 며칠은 진짜 어벙벙 거리면서 다녀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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