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구름에서 비 올지 모른다."

친구의 카카오 스토리에서 본 말이다. 정말 그렇지, 살다 보면 인생 참 어느 길로 가게될지 모른다는 것. 내가 여기 와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른이 되고나니 어릴 때 생각했던 사는 일과는 진짜 내가 사는 인생이 참 다르다. 어느 구름에서 비 올지도 모르고 언제 어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따스하게 비출지도 모르는 일. 아무리 기를 써도 결국 그게 인생이구나.

엊그제 대학 동기들 카톡방에 부고가 하나 올라왔다. 우리 바로 아래 학번 후배가 간단한 수술을 하러 들어갔다가 의료과실로 추정되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그 후배와 별 연고가 없었던데다 멀리 떠나와서 아무래도 친한 동기들을 제외하곤 소식을 전하고 듣지 못하고 10년 넘는 시간을 살다보니 그 후배가 누구였는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겨우 한 학년에 서른 명 뿐인 학과였는데 바로 아래 학번 후배 얼굴이 아예 기억도 안 나는 것도 한심하고... 어쨌든 누군가의 딸이었고, 엄마였을테고, 아내였을 후배가 그리 되었다는 소식은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일이었다. 졸지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남겨진 사람들의 황망함이 어떨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어릴 때 30대가 되면 뭔가 좀 안정도 되고 사는 일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30대도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서른둘에 예원이를 낳고 아이 키우느라 30대의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야 해서 심정적 질풍노도를 다 표출할 여유도 에너지도 없긴 했지만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는 30대 10년이 지나고 나니 아이는 나만큼이나 키가 커 있었고, 우리는 낯선 땅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아 공식적으로는 잘 정착을 했지만 여전히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바쁘다. 30대는 그렇게 지나가고 40대에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체 뭐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 해 놓은 것도 없이 대체 뭘 하면서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문득문득 혼자만의 우울에 빠져버리고 싶을 때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찾아오곤 한다. 어찌보면 20대에는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온전히 내 감정에 푹 빠져 허우적대다 어느 순간 발딱 일어설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끔 그런 때가 오면 내 우울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면 안된다는 부모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최대한 묻고 덮고 도리질을 쳐야 한다는 게 더 쉽지 않은 일인 것도 같다. 감정이란 본래 분출하든지 그 감정의 밑바닥까지 푹 젖어 버려야 해소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무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대단히 뛰어난 적은 없었지만 늘 주어진 일을 그닥 쳐지는 일 없이 중간 이상은 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능력있는 사람이었던가?라고 자문해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참 견디기 힘들다. 지금 알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알고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그 때는 더 잘 살 수 있을까? 과연??

그러나 모두 지나간 시간이며,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과연 지금 내가 그 정도로 행복하지 않은가?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 딸아이 웃는 얼굴만 봐도, 침대에 늘어져 자는 모습만 봐도, 내 앞에서 까불거리며 걷는 모습만 봐도 바보같이 웃느라 입가가 흐트러진다. 교복 단정히 입고 책가방 멘 뒷 모습을 보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는 내 30대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와 동시에 내 자신을 더 챙길 수 없었던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내가 무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마흔 셋의 내가 그냥 엄마 밖에 되지 못한 게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기도, 실망스럽기도 한 것이다.

거슬러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딱 한 순간!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행동을 하고 싶다. 그때 내가 좀 더 능동적이고 어른답게 움직였다면 오늘 나는 내 딸에게도 나에게도 더 많은 것들을 해 줄 수 있었을 테니... 나는 그 어느 날, 혼자 서울에 다녀오던 그 해, 지하철을 타고 뭔가 뒤끝 찜찜하고 왕창 속았다는 기분으로 엄마 집에 돌아가던 그 길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12년이 지난 일임에도... 앞으로 또 그럴 일이 있겠냐마는 그때는 잊지 말고 살아야지.

 

그래, 어쨌든 어느 구름에서 비 올지 모르지만 또, 어느 구름이 걷힐지도 모른다. 인생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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