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다시 읽었다. 중간에 1부,2부는 몇 번 다시 읽었지만 전권을 다 읽은 건 예원이가 프리스쿨 다닐 때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최소한 6-7년 만에 읽은 것 같다. 언제 다시 읽어도, 몇 번을 읽어도 늘 대단한 소설이다. 마침 마지막 5부 쯤을 읽었을 때 알쓸신잡에서 진주에 다녀왔고, 형평사 운동 얘기도 나오고... 그러고보면 하동의 작은 마을 평사리에서 시작해 그 곳에 사는 민초들의 구비구비 인생길을 따라 이야기가 가지를 펼치고 펼쳐, 곱씹고 또 곱씹어도 그저 저리게 아프고 안타까운 우리 근대사의 아픈 장면들을 다 지나가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토지>를 처음 읽었던 게 내 기억으론 고등학교 때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다시 읽을 때마다 이 긴 이야기에서 유난히 마음에 닿는 부분은 항상 다르다. 아직도 기억나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서희의 캐릭터에 홀딱 반해 읽고, 어느 때는 월선과 용의 이야기, 그리고 또 언젠가는 강인하게 살았지만 너무 아프고 허망하게 떠난 송관수가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식민지 가해국가와 피해국가의 출신이라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아픈 사랑을 하는 인실과 오가다의 사랑이 유난히 애처로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예외없이 마지막 장면에선 가장 슬프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서희와 양현은 부둥켜안고 기뻐하며, 언제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였던 장연학은 동저고리 바람으로 섬진강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 모습이 처연하게 느껴지고 마냥 기쁘게 바라볼 수 었는 것은 해방 후 다가올, 그 후 그들의 겪어내야하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결코 그 이전보다 수월하지 않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 후에 그들은 또 어떤 모진 세월을 견디고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앞으로 토지를 몇번 더 완독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읽어도 언제나 감동을 줄 것이며 세월이 또 어느만치 흐르면 다시 1권부터 꺼내 읽고 싶을 내 인생과 함께 갈 책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창작하는 능력은 없지만 이런 글을 읽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박경리님은 참 고맙고 대단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호주에서 이제 거의 15년 가까운 세월을 살다보니 이제는 향수병이라는 건 없어져서 한국이 그립거나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든다. 내가 무딘 건지 오히려 예원이가 요즘 들어 윤이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지 한국 가고 싶다는 소릴 가끔 하는게 다다. 헌데 오히려 숱하게 많은 여행을 베이스로 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은 안 들면서, 소설책을 읽을 때는 가끔 그 곳이 아련히 그립게 떠오를 때가 있다. 카메라로 멋들어지게 담아낸 모습보다 오히려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읽다보면 그렇다. 토지를 읽을 때는 언제나 지리산 풍경이 떠오르고 통영의 바닷내음이 코에 아른거리며 대학시절 학과 답사로 갔던 진주성과 촉석루가 눈 앞에 그대로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는 좀 여유있게 시간을 잡고 한국에 머무르며 아이와 함께 그런 곳들을 좀 둘러볼 기회를 가질 수 있으려나....

예원이의 한국어 실력, 한국사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가늠했을 때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이 책을 과연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눌 날을 꿈꾸고 싶다. 욕심일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늘 가능한 것만 꿈 꾸는 것은 아니니까.

 

<삼국지>가 배에 실려 호주에 오고 있다. 나는 삼국지를 열번 넘게 읽어치우는 골수 삼국지 팬은 아니었는데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너무 읽고 싶어서 엄마한테 배 소포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ry Poppins Returns  (0) 2019.01.02
The Nutcracker  (0) 2019.01.02
Mamma Mia! @Adelaide Festival Centre  (0) 2018.10.19
Tournament of Minds 2018  (0) 2018.10.18
R.J. Palacio, <Wonder>, <Auggie and Me: Three Wonder Stories>  (0) 2018.10.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