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장항리사지, 첨성대, 불국사.... 2001년, 2004년 경주.


대학 2학년 봄 답사로 처음 새로운 경주를 만났던 날은 
내 20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던 새 연인을 만난 날이었다.
그 답사는 3박4일 내내 남산만 속속들이 헤집고 다니던 답사였는데 그 산행은 행복하기만 했다.
그 답사 이후, 나는 지독히도 이 도시를 사랑해서 매년 빠지지 않고 찾았다. 

짧고 지독했던 연애가 끝나고 그 후유증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때,
공부도 안 되고 책을 펴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때,
문득 주변 인간관계가 묵직하게만 느껴져서 잠시 떠나 있고 싶을 때,
그저 빨리 끝내고 싶기만 하던 논문이 한 페이지도 더 나아가지 않아 쓰고 지우고만 몇번을 반복했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경주를 찾았다.
어릴 때는 버스를 타고 히치 하이킹을 해 가며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땐 매번 앞으로 몇개월은 거뜬히 버틸 에너지를 비축해 올 수 있었다.

힘들 때 뿐이 아니었지.
샘물도 경주를 참 좋아해서 둘이 함께 찾은 것도 여러 번이다.
그곳엔 우리 부부의 소중한 추억도 곳곳에 숨어 있어서 언젠가 예원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다.
두 사람이 셋이 되어 다시 가는 경주 여행이라니,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따뜻한 봄날 벚꽃이 흩날리던 토함산 올라가는 길.
보고 보고 또 봐도 참 멋진, 그래서 볼 때마다 가슴 벅찬 석굴암.
탑 앞에 서 있다가 한 발 가만히 내딛으면 졸졸졸 물소리가 좋던 장항리사지.
몇 번을 올라도 곳곳이 다 그냥 보물 같은 남산의 이곳 저곳들.
산책하기 참 좋았던 대릉원.
갈 때마다 찾아도 그냥 돌아오긴 허전해서 늘 들렀다 오던 박물관.
소박하지만 아늑한 경내 저 안쪽에 있는 불상이 예쁜 보리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탑이 있는 감은사지.
광활한 황룡사지 목탑터에 앉아 눈 감고 천년 전 그 곳을 상상하기.
.....

우리나라에 경주 같은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수천번은 했다.


요즘 나는, 경주가 사무치게 그립다.
스무살 처음 만났던 그 연인,
아무리 바빠도 일년에 최소한 두번은 꼭꼭 챙겨 만나러 갔던 그 연인을 못 만난지 벌써 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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