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이레,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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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략… 이런 이륙에는 심리적인 쾌감도 있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운 구절들이 눈에 번쩍 띄이는 책이다. 그래서 매번 다른 색 색연필을 찾아 밑줄을 긋게 만든다. 그러나 늘 그게 바로 내 생각인양 절절히 공감하는 구절이 바로 위에 적은 두 부분이다. 책장을 뒤지다 다시 꺼내 읽었다. 호주에 와서 사는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여행에 대한 갈증이라 대답할 것 같다.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 둘이 달랑 떨어져 대부분의 시간을 둘 모두 유학생으로 살았던 시절이니 굳이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때때로 일상의 답답함을 살풀이 하듯 풀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강력한 충전이 되어주는 여행의 부재는 몇달째 비도 내리지 않아 바닥이 을씨년스레 드러난 강처럼 마음을 바삭바삭 마르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다. 보들레르, 플로베르, 워즈워스, 고흐... 그들을 따라 한장 한장 넘기며 마음을 달래다보면 어느새 해갈이 되는 기분이다. 여행 이야기이지만 기행문은 아니다. 좋은 곳, 맛있는 음식, 멋진 사진들이 책이 포화상태가 되도록 늘어 놓는 여타의 여행 서적을 다 읽다보면 그 목마름이 배가되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내 입장에선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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