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레이드는 지금 한겨울이다. 애들레이드의 겨울은 늘 비와 함께 시작된다.

여지없이 올해도 날마다 밤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잠을 자다 요란한 빗소리에 눈을 뜨고, 아이가 놀라 엄마를 부르지 않을까 옆방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는 밤들. 

열번째 맞이하는 이 곳의 겨울.

으슬으슬 추운 집안 공기, 분명히 한국보다 높은 기온인데도 더 춥고 잔뜩 웅크려지는...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딱 떨어져 견디기 힘들던 이곳의 겨울이 이제 익숙해졌다.

세월의 힘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예원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여섯번째 방학.

프리스쿨 들어가기 전까지 늘 집에서 엄마랑만 시간을 보내게 했던게 아직도 아이에게 미안하고 마음에 걸려

방학이면 늘 학기중 보다 더 바쁠 정도로 친구들 만나고 이것저것 보여주고, 하러 다니고... 그리 해줬는데

체력적으로 좀 힘들어하기에 이번 방학은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작정했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둘이 알콩달콩 보내는 시간이다.

종일 집에 있다 심심하면 마당에 나가 맑은 공기 쏘이며 텃밭에 있는 흙으로 장난도 치고

오랜만에 해가 반짝해 포근하던 어느 오후에는 동네 놀이터에 자전거 끌고 나가 둘이 같이 햇살 아래서 책도 읽다 들어오고

둘이 휘적휘적 도서관에도 다녀오고, 주말엔 세식구가 아트 갤러리 키즈프로그램 다녀오고,

미리 예매해뒀던 공연도 보러 다녀오고... 그렇게 보낸 방학의 첫 일주일.

쉬고 싶다더니 며칠 지나면 심심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왠걸... 종일 책만 읽는다. 그것도 매우 행복해하며...

엊그제 보고 온 공연은 예원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만든 연극이었는데

공연장에서 다음 권, 그 다음 권까지 다 사들고 와서 첫권부터 몇번을 다시 읽고 있네.

덕분에 요즘엔 나란히 앉아 각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을 매일매일 나는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끊어 읽어도 되는 소설이 아니라 

니체도 꺼내 읽고, 도덕경도 다시 읽고, 읽자고 벼르고만 있던 해롤드 맥기의 책도 시작했다.

그래, 쉬자.

이렇게 비가 오고 흐린 애들레이드의 겨울에는

느슨하게 앉아 창밖으로 맑았다 흐렸다 비도 뿌렸다 변덕을 부리는 하늘을 보며

책이나 실컷 읽으며 보내는게 최고더라. 덕분에 엄마도 이런 시간 오랜만이다. 고마워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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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가을 @Loreto College

 

Loreto College Junior School Athletics Carnival 2013 @Santos Stadium

 

다시 가을이다. 애들레이드의 가을이면 항상 그렇 듯, 곳곳의 잔디들은 가장 선명한 초록빛을 자랑하고 있고

거리엔 낙엽이 소복하게 쌓여 거리를 걷는 예원이는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꼭 낙엽 무더기 위에 올라가 발로 장난을 치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깔깔 거리고 웃어대고,

덩달아 같이 웃으며 숨을 들이쉬면 들숨 속에 기분 좋게 차가운 싱그런 공기가 잔뜩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는 나이를 매년 한살씩 먹기 때문에 그 다음 나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도 삼십대 초반까지 정도만 적용되는 얘기인가보다.

서른 다섯 넘으면서는 늘... 1년 내내 내 나이가 낯설다.

아이가 이렇게 크고 있는데 내 나이 먹는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아이 덕분에 학교에 매일 드나들며 5살부터 열몇살 여자 아이들을 보며

매일, 볼 때마다 아이들이 참 반짝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저 나이엔 나도 저리 싱그럽고 반짝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저 반짝임 속에 내 딸아이도 못지않게 한 몫 하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아이 때문에 내가 느끼는 행복의 양은 얼마나 될까?

아이로 인해 치유되는, 예원이가 곁에 없을 때의 나였다면 제법 마음에 입었을, 상처들은 또 얼마나 될까?

나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게 아니다. 아이도 나를 더 나은 어른으로 자라게 해주고 있는게다.

 

어쨌든 미처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세월은 참 빨리도 흘러간다.

 

그건 그렇고,

스팸 댓글 요즘 왜 이렇게 난리. -.-

지난 번에 한무더기 지웠는데 오늘 들어오니 또.... 잔뜩 달려 있었다. 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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