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천개의 파랑>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고 빌려다 읽은 책인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영화도 소설도 SF는 내가 썩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데 요즘 우연히 읽은 몇몇 한국의 SF 작품들은 그간 보아왔던 서구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감성이 있어서 그런지 읽은 것들 몇몇이 생각보다 참 괜찮았다. 선입견 가지지 말고 다 읽어봐야겠다.

 

"그래도 우리가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떄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보다 늘 나을 거예요. ..." <천개의 파랑>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마음 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밖에. (p107)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 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궅히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p116)

어느 정도까지 공격적으로 말해도 될 것인가가 오래 하고 있는 고민이다. '조신하게, 예쁘게 말해' 하는 식의 강요는 지긋지긋해서 굴절 없이 똑바로 말하고 싶은데 또 어느 선을 지나치면 따가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치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p119)

여자들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세계 곳곳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 여자 이름으로 된 제목의 소설들을 많이 쓴 것은 그래서인것 같다. 하루는 처음으로 부르카를 입은 여자를 보기도 했다. 여자는 혼자 걷고 있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평범한 랄프 로렌 셔츠와 나이키 운동화 차림이었다. 색색의 평상복 사이에서 혼자 눈만 남기고 검은 첮으로 휘감은 모습은 둔중하게 다가왔다. 어디까지가 당사자의 선택이로 어디서부터가 집단적 압력의 결과일지, 존중에서 비롯된 문화상대주의가 폭력에 대한 방관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지점을 어떻게 짚어낼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세계가 이렇게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것은, 이 세계를 복원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교육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추측하기도 한다. 그 여성들이 잃은 가능성은 결국 인류가 잃은 가능성이 될 확률이 높아 조급해지지만, 여성이 극도로 억압받는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먼 곳에서도 지지를 보내기 예전보다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모여서 강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인권 단체에 기부를 하고 오지은의 <작은 자유>를 들으며 마음을 다진다. (p227)

 

올해도 기록엔 영 소홀했던 한 해가 되겠구나. 어차피 다 간 한해, 2022년엔 좀 더 신경을 써보자.
COVID 때문에 늘 거기서 거기인 하루하루라는 핑계로 게을러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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