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 엄마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경우는 한국에서와 상당히 다른 생각의 포인트를 발견해서 한번씩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세상 어디나 아이 키우는 부모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아이가 차차 고학년에 근접해 가고, 친구들 중에 형제 자매들이 이제 high school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새삼 마음에 들어왔던 지점은 주변의 어느 학부모도 대학 등록금 걱정은 정말 안한다는 것이다. 예원이가 다니는 학교는 제법 학비를 내야하는 사립학교인데 엄마들이 농담삼아 애들 12학년 졸업시키고 나면 학비 들어갈 일 없으니 매년 유럽여행을 다니겠다는 류의 얘길 하며 깔깔거리곤 한다. 그들의 경제력이 대단히 탄탄해서가 아니라 호주에선 빈부와 상관없이 대학 등록금이란 아예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난 운 좋게도 아빠가 비교적 쉽게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계셨던데다 내가 워낙 철딱서니는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린 20대를 보낸지라 막상 그 시절에는 직접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항상 등록금 투쟁은 한해를 시작하는 당연한 코스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액수가 내 대학시절보다 훨씬 높아져 대학생들도 사회 초년생들도 늘 학자금 대출을 갚는라 허덕이고 있다는 뉴스를 수시로 접하는 내겐 그게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어느 어느 나라는 대학 등록금이 무료래' 따위의 얘기는 말로만 들었지 딱히 내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학부모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정부의 탄탄한 학비 지원 시스템 덕이었고, 바로 그것이 우리 부부가 시민권을 받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호주에는 세가지 학비 지원 시스템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영주권자까지, 나머지 둘은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영주권자인 경우 CSP를 받을 수 있는데 정부에서 해주는 학비 지원이다. 영주권을 가진 학생들은 총 등록금에서 CSP로 지원되는 부분은 제한 나머지를 학교에 내고 (대충 찾아보니 유학생들이 내야하는 full fee가 1년에 33,000불 정도라면 정부 지원후 학생이 지불할 학비는 6,500불에서 7,000불 사이 쯤 되는 것 같다.) 시민권자는 그 차액을 이자 없이 정부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HECS-HELP. HECS는 이자는 없고 물가상승율이 반영된다. 그러니 일단 시민권자들은 학비로 내는 돈이 없는 셈이다. 돈 걱정 안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고, 공부하면서 캐주얼잡 하나 정도 하면 호주는 시급이 높아 20대 초반에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쉬울 수 밖에 없다. 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들은 그걸 저축할 수도 있을테고... 게다가 대출받은 학비는 졸업이나 취업과 동시에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취업 이후 연봉이 53,000불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 자동으로 ATO에서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시스템. 그러니까 남들보다 세금을 좀 더 내는 식으로 갚아나가는 것이다. 만약 죽을 때까지 53,000불 이상의 연봉이 안된다면... 그냥 안 갚아도 되는 돈인 것이다. 그리고 연봉이 더 올라 100,000불 이상이라면 더 높은 퍼센트를 ATO에서 자동으로 빼간다. 그리고 Bachelor를 끝내고 더 공부를 하고 싶다면? Master 부터는 FEE-HELP를 통해 학비를 대출 받을 수 있다. 다만 CSP는 바첼러 디그리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마스터 디그리를 할 때는 대출받는 액수가 더 커지지만 이 것 역시 상환방법은 HECS와 같고 한 학생이 FEE-HELP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 제한은 보통 마스터 2개를 할 수 있는 액수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대학 등록금 걱정 따위는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이 우리가 시민권을 받아야겠다고 결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가끔 제 몸 하나 쭉 펴고 누울 수도 없는 고시원 방에서 쪼그리고 잠을 잔다거나, 삼시세끼를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로 해결한다는 류의 한국 청년들 얘기를 들으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물론 호주에 살면서 맘에 안들고, 답답한 점들 너무나 많다. 왜 아니겠는가? 불합리한 일이 없는 사회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상 사는 건 어디나 다 쉽기만 하진 않으니까. 어느 나라 복지제도가 아무리 좋다고 그 사회가 좋기만 할리도 만무하다. 다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올 때는 그게 더 커보이는 법인데 호주 생활 12년 동안 내게 가장 크게 들어온 것은 (한국에 비하면) 굉장히 잘 되어 있는 편인 갖가지 복지제도들 어느 것도 아니고, 바로 이 대학 등록금 지원 시스템이었다. 유럽의 어느 어느 나라들처럼 무상 등록금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이 정도 제도만 한국에 있다면 부모도 아이들도 등록금에 허리가 휘진 않을 수 있을텐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