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아름다움은 몇번을 보아도 질리지가 않아.
바나나의 소설 <하드보일드 하드럭>에서 사카이가 11월의 하늘을 보며 하는 말이다. 요즘, 내가 그렇다. 밤에도 낮에도 티 하나 없듯 맑은 하늘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며칠 전, 예원이 저녁 먹이고 설겆이를 한 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더니 담 위에 살짝 걸친 달이 참 예뻤다. 저 달을 카메라에 담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을 것 같은데 오늘은 벌써 보름달이 떴다. 달빛이 밝은 오늘 밤엔 별도 많이 보이지 않는구나. 보름달 뜬 밤엔 온전히 달빛 하나로 마당이 따뜻하게 빛나고, 그렇지 않은 날은 반짝이는 별들이 총총총. 아들레이드의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는 맑은 하늘이 참 좋다. 아이를 재우고 뒷마당에 나가 서서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고 들어오는 일이 어느새 날마다 하는 일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는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러고보니 한국에선 하루에 한번 여유롭게 하늘 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살았는데도 참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야 했던 날들이었다. 여행을 해도 조용히 쉬고, 마음을 비우는 일보다 항상 부도 하나 탑 하나 더 보겠다고 잠도 줄여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게 먼저였다. 이십 대였으니까, 넘치는 열정으로 질주하는 말처럼 원하는 것을 향해 무조건 달리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만, 내 안에 갇혀 참으로 주변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하여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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