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일정을 계산해보니 개학 전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만한 기회는 한번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엠마가 보고싶은 영화는 How to train your dragon 3편이랑 Storm boy 두개라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이 영화로 결정해서 개봉날이었던 어제 다녀왔다.

이 영화는 60년대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호주 아이들에게 추천 도서로 읽혀지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작가 Colin Thiele가 이 곳 애들레이드 출신인데다 알고보니 촬영지도 남호주 Port Elliot에서 했다고 한다. 엠마 말로는 작가가 애들레이드 출신이기도 하고 예원이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Marryatville high school의 교장 선생님도 했던 사람이란다. 엠마 말로는 몇 년 전에 읽은 책인데 그때 당시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서 지난 번에 극장 갔을 때 영화 트레일러를 보면서부터 개봉하면 꼭 보고 싶다고 여러번 말했었다.

나는 소설을 안 읽었으니 그냥 영화 자체로 봤고, 아무래도 예원이는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면서 보게 되었던 것 같은데 영화가 시작하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의 전경을 카메라가 쭉 훑은 후 (아마 이곳이 포트 엘리어트 근처였겠지) 하늘에서 그 곳 전체를 보여주는데 그때 엠마가 한 말이 "That's exactly what I imagined." 였다. 적어도 소설 속 작가의 묘사를 그대로 잘 반영해서 영화를 만들었겠구나 기대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할 수 있었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손녀딸에게 본인의 어린시절 엄마 잃은 펠리칸 형제 세 마리를 데려다 키우며 벌어졌던 소년시절 이야기를 해주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예원이 얘기로는 소설은 그 액자 안의 이야기라고 한다. 영화로 만들면서 약간의 각색을 거친 모양이지만 소설의 이야기를 거의 훼손하지 않고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따님한테 들었다. 나는 책을 안 읽어서.... 영화도 봤으니 이제 한번 읽어볼까 함. ^^;;;

소설을 읽지 않은 나의 감상을 말하자면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긴 했다. 외롭고 상처받은 어린 소년이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해내고 함께 서로를 치유하며 성장한다,라고 간단하게 정리하면 큰 줄기는 이런 종류의 다른 영화들과 비슷하다. 다만 그 안에 호주 원주민들이 대대로 살아가던 땅에 대한 경외감이나 그 밖에도 굉장히 호주스러운 갖가지 정서들이 영화 속 큰 줄거리에 잘 버무려져 있었다. 호주에서 꽤 오랜 기간 유럽 이민자들이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을 말살하고 아이들에게 근대 교육을 시킨다고 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을 격리 시키는 등 굉장히 잔인한 일들을 벌였지만, 지금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내가 배우고 들었던 그 시절과는 정부의 정책도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일단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 예술을 잘 보전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게 보이는 것 같다. 2008년에 호주 총리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사과를 해서 뉴스에도 나오고 했었는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세번 미안하다는 말이 총리 입에서 나왔던 그 야외 연설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호주 원주민들 모습을 뉴스로 봤던 것들이 생생하다. 물론 아직도 완벽하지 않고 계속 사회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Australian Day를 1월 26일로 하면 안된다는 얘기라는데 그 날이 바로 호주에 첫 잉글랜드 이민자들이 들어온 날이다. 결국 그 날은 호주 원주민들에겐 침입자들이 들어와 박해가 시작된 날이니 Australian Day여선 안된다는 얘기. 나에게 긍정적 신호로 느껴지는 건 이 모든 것들은 딸아이가 4학년 때부터 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것들 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교육을 받느냐는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떤 시민으로 자라게 하느냐를 가늠해보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 곁가지 얘기는 여기까지만.

참,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남호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디테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마이클 손녀의 교복이었다. 손녀의 첫 등장 장면에서 아이가 입고 있는 교복이 남호주 Scotch College 교복이었는데 나중에 촬영지도 배경도 전부 남호주라고 하니 그 아이가 그 교복을 입는 게 너무 당연하게 이해가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 소년 마이클이 자라 굉장히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지금은 딸이 죽고 사위에게 경영을 맞겨둔 엄청 부자 할아버지인데 스카치 컬리지는 남호주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학교이다. 그러니 그런 부자집 손녀딸이 다니는 학교로 꽤 앞뒤가 맞는 설정이라고나 할까. ^^

또 촬영지라는 Port Elliot는 우리가 가끔 가는 Goolwa beach와 Victor Harbour 사이에 있는 작은 타운으로 아름다운 비치가 있고 조용한 예쁜 시골 마을이라 애들레이드 사람들이 여름에 자주 가는 곳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Coorong National Park는 지도에서 찾아보니 포트 엘리어트와 굴와비치 사이에 있는 작게 반도처럼 튀어나온 곳에 있는데, 자주 다니던 곳이랑 가까우니 가는 길도 낯설지 않아 다음 주에 더운 날 세 식구가 한번 가볼까 하는 중이다. 영화 속에서 보니까 꽤 멋있어서 근처에서 사진도 찍고 구경하다가 굴와비치에 들러 조개 잠깐 잡고 놀고 오는 일정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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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한국 뉴스들을 보고 있으면 참 기가 차다. 더 진일보한 사회는 둘째 치고 일단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의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 사회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전두환 마누라 이순자의 말도 안되는 인터뷰에다 지만원인지 뭔지 별 그지같은 인간에 대한 얘기들이며 체육계 지도자라는 인간들이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일삼았고 심지어 여자선수들이 어린 나이부터 성폭력에 시달렸다느니... 태극기 부대들이 학살자 집 앞에 가서 집회를 하며 지들을 밟고 구인하랬다나 뭐라나.. 대체 이 인간들에 관한 뉴스들은 왜 그렇게 많이들 써 주는지 모르겠다. 사실 굉장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 내가 그 안에 살지 않아 모르는 건가? 자한당과 그 지지세력들은 정말 한국 사회의 암세포다. 일단 이들부터 사회 주류세력에서 밀어버려야 뭘 해도 하지. 자본 권력이 몽땅 이들 손아귀에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과연 시스템을 바꾸는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가능은 할지 가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거기다 대통령 지지자라는 사람들은 내부 총질이나 하고 있고(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지 한참 지난 것 같다), 어제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가 질문 태도 때문에 하루 종일 검색어에 올랐다는데 자세히 기사를 보니 뭐 그게 그럴 일인가 싶다. '이명박근혜 때는 한마디도 못하는 것들이' 라는 말들을 하나본데 그럼 촛불 들고 그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서면서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나? 여전히 권력 눈치 보고, 그 권위에 눌려 말 가려하는 사회? 촛불 들고 나온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게 싫어서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질문의 깊이나 내용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할 수 있지만 태도를 문제 삼는 건 잘 모르겠다. 지지자들 마음에 안 들수도 있겠지만 태도 말고 질문의 질에 대해 비판하길.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대단한 이유는 철저한 권위주의의 청산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는 지지자들에 의한 이런 식의 비난은 좀 이상하지 않나?

이 나이쯤 되고, 외국에 나와 사는 덕분에 이곳 저곳 출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한국에서처럼 인간관계가 내 영역 안에 있는 비슷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하는 생각은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는 나라 출신들도 별 같잖은 사람들도 있고 어떨 땐 참 좋은 사람, 존경할만한 사람들도 보고... 이 모든 것들은 그냥 개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다만, 커뮤니티 전체적으로 좋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의 목소리에 구성원 다수가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에 의한 시민의식이 그 사회의 질을 결정하는게 아닐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로 인해 너무 많은 것들이 뒤틀려버린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언제나 참 갑갑하다. 애당초 한국 현대사로 전공을 정하고 공부하던 시절에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답답해서, 그 느낌이 싫어서 그렇게 망설임 없이 선택했던 길인데도 미련없이 그만두고 떠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애당초 내가 역사공부를 제대로 할 만한 깜냥이나 되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 즈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고, 그러니 미련없이 손 떼고 떠날 수 있었겠지.

얼마 전에 남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호주 사람들의 분리수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사실, 우리가 여기 살면서 느끼는 건 환경을 중시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지고 있다는 호주에 대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리 높다는 생각은 안 든다. 심지어 딸아이 학교에서 호주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쓰레기 배출양이 많은 나라라며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법에 대한 교육을 따로 시키기도 했었다. 암튼, 그 대화의 끝에 너무 개념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 하나야 뭐... 이런 생각 말고, 남들이 하나도 안해도 내가 잘 하는게 내 시민의식 수준이지. 란 말을 했더랬다. 세상을 바꾸는 큰 일은 못 하는 소시민이지만 적어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며, 주변이 어떻든 나는 옳게 행동하며 살도록 노력해야지. 결국 세상이 바뀌는 건 그런 소시민들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니까. 우리 딸의 경우 온전히 학교에서 교육 받으며, 본인 스스로 책을 읽으며 깨달아가는 사회의식이 이제 열살쯤 되니 보일 때가 있다. 남들과 대화할 때의 기본적인 예의와 친절, racists나 sexists에 대한 거부감, 타문화에 대한 존중 (cultural sensitivity) 같은 것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되고 있는 과정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래서 딸이 그런 얘기를 언뜻언뜻 할 때면 참 뿌듯하고 좋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 시키고자 학교를 고르고 골라 보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호주 전반적인 일로 일반화 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 아이 주변의 아이들은 그렇게 교육 받고 있는게 보여 다행이다.   

갑갑한 마음에 줄줄이 회의적인 말들만 쏟아냈지만 70-80년대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사실 참 많이 달라졌다. 역사는 원래 천천히 가는 거니까. 가다가 삐끗하더라도 내 나라가 어쨌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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