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다음에 잡은 책은 정말 실수였다. 렘브란트의 유령. 제목만 보고 진주 귀고리 소녀 같은 소설일거라 추호도 의심치 않고 샀는데 끝까지 읽을 마음조차 들지 않는 책이었다. 엄마랑 교보 들렀다가 예원이 책 사면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휙 집어 든 책이었는데, 책 사고 '돈 아깝다'는 생각은 정말 처음 해봤다. -_-;;;

그야말로 정화작용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훈의 소설을 다시 집어들었다. 신경숙이냐 김훈이냐 잠시 고민했으나 간결하고 후련한 글이 필요했다. 비싼 배송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읽을만한 소설들을 챙겨 보내주시는 부모님께 정말 간절히 감사한 순간이었다. 없었으면 어쩔뻔 했냐고... 

김훈을 읽을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몹시 부럽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건조하지만 그 문장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장면 장면이 머리에, 가슴에 그대로 와 박힌다. 역사 속에서 스러져 사라지고, 일어나 부흥하는 것들을 읽고 이야기하고 쓰면서 내 20대, 10년 세월을 고스란히 보냈건만 읽는 내내 스러져가는 가야와 일어나는 신라의 이야기는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이야기는 왜 그리도 낯설었는지 모르겠다. 김훈, 조정래, 박경리 같은 작가들을 읽을 때면 늘 과거의 이야기를 재현해 내는 재주는 사실 역사가들보다 소설가들이 몇 수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항상 근거하는 사료가, 그야말로 물증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역사학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니 사실 재주의 문제는 차치하고 가능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뭐 할 수 있다고 그런 글을 아무나 쓸 수 있는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예전에 농 삼아 소설가들이 부럽다는 얘기를 하는 선배들도 몇 봤다.

우엣든, 정화작용은 최고였다. 그리고 읽는 재미 뿐 아니라 책은 고르는 재미를 꼭 누리고 사야 후회하지 않는다. 내친 김에 토지를 집어들었다. 예원이랑 보내는 하루하루 속에서 16권을 다 읽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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