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존 인물을 다룬다는 것만 해도 제작진이 꽤나 조심스레 정성을 들여야 할텐데 게다가 상징적이라고는 하나 현재까지는 가장 강력한 영국 왕실의 이야기가 소재라는 점에서 아마 더 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다이애나비가 죽은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는 걸 알았다. 몇년 안된 기분이 들지 왜??
우야든동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봤다. 엘리자베스 2세로 분한 헬렌 미렌의 연기도 훌륭했고, 필립 공을 연기한 제임스 크롬웰은 그 고집스런 모습을 보는데 자꾸만 '베이브'에서의 엉뚱한 농부 아저씨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 민망하게도 혼자 낄낄거리고 웃었다. 거기다 찰스 왕세자는 어쩜 그리 똑같이 닮았는지... 게다가 하는 짓도 참으로 못났더라. 나는 공화국인 나라에서 태어나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그런건지는 몰라도 영국 사람들의 왕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이해가 안된다. 다이애나가 사고로 죽었던 그 당시에도 뉴스를 통해 영국인들의 과도한(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애도나 슬픔의 표현들이 매우 이해가 안되었더랬다. 찰스 황태자와 카밀라의 결혼식 때 심지어는 호주에서조차 어찌나 호들갑을 떨어대던지 그때 여기도 이런데 영국은 오죽하겠나 싶긴 했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하도 민망하게 오버를 해서 많이 투덜거렸던 기억도 있다.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왕실이 뭐 별건가, 매우 전근대적인 대표적인 유산이 바로 왕실이 아닌가 뭐 그런게 평소 내가 가졌던 생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매우 놀라웠던 건 여왕이 직접 털털대는 고물차를 운전하기도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거처가 매우 소박해 보인다는 것. 실제는 어떨지 잠시 궁금하기도 했다. 하긴 뭐 여왕도 사람인데.. 싶은 생각도 들고... 게다가 피터 모르간이 매우 공들여 왕실 측근의 인물들을 인터뷰 하고 썼다니까 여왕의 일상이 정말 영화와 비슷할 지도 모르지. 고물 지프를 운전하고 나갔다가 차가 고장나 잠시 서 있으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리고 나타난 아름다운 사슴 한마리를 바라보던 여왕의 모습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과연 그 사슴을 보고 죽은 며느리를 생각하며 연민을 느낀걸까? 아니면 정 반대로 한때 며느리였던, 그리고 손자들의 엄마인 여자의 죽음에 사슴 한마리가 죽었을 때만큼의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또 하나, 열심히 국민과 여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 하는 블레어. 그 속에서 신임 총리로서 자신의 입지까지도 단단하게 다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저런 여우같은 조율 능력을 가진 정치가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궁금했더랬다. 과연 언제까지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 남아 있을까? 영국의 왕실은 과연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영원할 수 있을까? 찰스나 윌리엄은 영국 왕위에 오를 수 있을까? 등등등... 평소에 전.혀.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들인데 이런 저런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만든 영화였다.
아무튼, 요즘 나는 영국 영화, 혹은 배경이 영국인 영화, 그리고 영국출신 배우들에 폭 빠져 있다. 그 이유는 영국식 액센트가 너무 좋아서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보는 내내 귀가 너무 즐겁단 말이지... 한국에선 영어와 워낙 담 쌓고 지냈던지라 부끄럽지만 미국식 액센트와 영국식 액센트를 구분도 못하는 무지한 귀였는데 그 구분이 가능해 진 뒤로는 British English가 무척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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