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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아직도 못 끝냈다. 이제 열권째. 평사리 사람들은 이제 늙고 그 다음 그리도 또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다시 읽어도 역시 무척 재미있다. 한참 재미나게 읽다가 자는 예원이 깨는 소리가 들리면 어찌나 아쉽게 책장을 덮어야 하는지... 그래도 역시 대하소설은 감질맛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으로 좋다. 1권을 도입부분, 평사리의 풍요로운 추석 풍경 묘사를 읽어내리면서 보수 공사 전의 쌍계사 부도 옆, 무너진 담 사이로 봤던 황금빛 가을 들판이 떠올랐다. 눈이 닿았던 순간, 그 풍요로운 아름다움이 슬프게 느껴졌었는지... 그때 그 순간 먹먹하던 그 기분이 새삼스레 다시 살아나 지리산 언저리의 그 고장들이 그립고, 궁금했다. 어쨌든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 같은 작품 하나 남겨두고 가셨으니 곡절 많던 인생살이었다 해도 작가로 살았던 삶은 아쉬울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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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읽고 있는 탓이겠지만, 지리산 생각이 부쩍 많이 난다. 구례, 하동, 남원... 쌍계사, 화엄사, 연곡사... 호주로 오기 전, 이제 다시 언제나 되어야 또 여유있게 한국땅 여행하겠냐며 없는 시간 짬내어 지리산 자락이랑 경주 등등 우리가 좋아하는 곳들 한번씩 둘러보고 왔더랬는데 정말이지 잘했다. 한국에 가끔씩 들어가도 가족, 친구들과 보낼 시간도 부족하다보니 이십대 우리가 좋아하던 곳들 가 볼 시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그곳엔 가을이 한창이겠구나... 옛사진들을 모아둔 폴더를 뒤적이다 발견한 '고마워요 지리산!'이라는 담벼락의 글씨가 마음에 들어 찍어둔 어느 옛가옥의 정경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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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이가 요즘 부쩍 책을 너무 좋아한다. 하루 종일, 눈 뜨면서 거실로 데리고 나오면 일단 책 읽어 달라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일 뿐 아니라 정말 다른 장난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종일 책만 읽어 달랜다. 그 동안은 일부러 책 많이 안 읽어줬었는데... 이제 겨우 11개월도 채 못 채웠고, 앞으로 자라면서 수만번을 변하고 또 변하는 게 아이들 성장이니 이런 생각은 할 필요 없겠다 싶지만, 너무 책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렇다고 책 안읽는 아이이길 바라는 건 절대 아니며, 책 좋아하는 게 무에 걱정거리일까 싶지만 예원이는 나 같지 않게 알차게, 실속있게, 제대로 책과 친해지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적어도 내 쓸데없는 지적 호기심, 허영심과 오만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호주로 오면서 우리 부부 결혼 전 이고 지고 살던 책을 처분할 때, 책 가지러 왔던 헌책방 주인 아저씨가 기막혀 할 정도로 쌓이고 쌓여있던 책들. 멀리 떠나는 길이 아니었으면 책 욕심에 그것들 다 처분할 생각조차 해 보지도 않았을게다. 어제 티트리 플라자에 갔다가 예원이 책 한권을 더 사들고 들어왔다. 자주 사 주게 될지언정 한번에 두권 이상씩은 사 주지 않으려고... 한권씩 한권씩 아껴 읽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다. 엄마처럼 책을 곱씹어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걸신 들린 듯 후딱후딱 읽어치우는 독서 습관은 안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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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오락가락이다. 며칠은 30도가 넘는 날씨였다가 또 며칠은 꽤 쌀쌀했다가... 환절기 날씨가 익숙치 않았는지 예원이가 한 며칠 열이 올라 신경이 좀 쓰였다. 다행히 설사도 안하고 기침이나 콧물 등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아서 집에서 해열제도 먹이고 물수건도 써가면서 체온조절만 해 줬는데 한 나흘 그러더니 어제부터는 다시 제 컨디션을 찾았다. 이제 곧 돌이 다가오니 모유를 끊을 시기가 다가오는데 걱정이다.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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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플레이어를 새로 샀다. 한국에서 쓰던 제품을 지금껏 사용했는데 코드프리가 안되는 기종이라 맘에 드는 영화 DVD도 맘껏 못보고 사지도 않고 그랬는데 새 플레이어는 코드프리가 되어서 한국, 일본, 호주... 어느 지역코드도 모두 소화가능. 게다가 디빅도 플레이가 되는 제품이라 정말 신난다. 랄랄라~ 다만, 예원이가 있으니 맘껏 보진 못하고 있지만 암튼 랄랄라~ DVD 플레이어를 새로 장만한 탓이겠지만 요즘 문득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중에 제일은 린다린다린다!!! 며칠 안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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