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국내도서
저자 : 최진영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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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정말 화가 너무너무 나서 온 몸의 혈관이 다 빵빵하게 부풀어 터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책읽기를 좋아하고, 제법 글재주가 있고, 졸업식이면 친구들과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았고,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을 할 때면 속 시끄러운 집을 나와 동생과 손 잡고 동네를 오가며 놀던 평범한 여고생이 어느 하루 친척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전혀 다른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제야가 너무 안쓰러워서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싶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그 일 이후 제야의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아 증거를 수집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주변 사람들은 제야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조하지 않으며 제야가 아니라 범죄자를 범죄자로 대하며 그 개새끼가 법의 심판을 받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제야가 그 사건의 충격을 모두 극복할 수는 없었더라도 그렇게까지 외롭게 스스로와 싸우진 않을 수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제발 성범죄자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는 사회 시스템과 인식이 모두 함께 마련되길...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어른다운 진짜 어른으로 나이를 먹어가자고...

 

단순한 진심
국내도서
저자 : 조해진
출판 : 민음사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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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보내진 이들과 입양 보낸 이들의 이야기. 읽으면서 내가 그 감정을 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가슴 한구석에 계속 두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해외에 입양이 되어 좋은 부모를 만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은 살고 있어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그 스스로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기도 할테고 반면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해외로 입양된 것이 일생의 행운이라 말하는 어느 변호사와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도 있을게다. 감히 짐작하건데 그래도 어느 한켠에 본인의 존재에 대한 빈 구석이 있긴 하지 않을까? 문주였고 박에스더였고 나나인 이 책의 주인공도 안쓰러웠지만 평생을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살았던 연희의 일생이 참 아프고 아팠다. 연희를 만나고, 서영과 소율의 노력으로 본인의 입양 과정에 대해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나나도 조금 덜 외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고, 소설의 마지막 양 어머니 옆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의 마음속 빈 자리가 조금은 작아졌으리라 짐작하고 싶다.

딸아이 학교 친구 중에 베트남에서 입양이 된 아이가 하나 있다. 이 아이는 좋은 부모 만나 좋은 교육 받으며 잘 자라고 있는 케이스인데 가끔 그 아이 생일 즈음이 되면 엠마가 'feel sorry for her'라는 얘길 할 때가 있다. 사실 그 아이는 생모가 고아원에 버려두고 간 경우라 진짜 생일을 알 수가 없단다. 양부모가 대충 아이 월령에 맞춰 6월에 생일을 정해 축하해주고, 입양된 날을 기념해 adoption day라고 어릴 때부터 생일과 똑같이 축하해서 친구들끼리도 adoption day가 되면 같이 축하해주는 모양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5-6살 꼬마일 때는 생일이 두번이라고 부러워하더니 좀 자라고 언젠가부터는 그 아이 생일이 되면 한번씩 하는 말이다.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선 이 아이 하나지만, 호주 오고나서 해외에서 입양되어 크는 아이들을 몇 번 볼 기회들이 있었는데 입양한 부모들 정말 최선을 다해 키운다. 정말 가슴으로 낳았다는 표현이 맞다 싶은데 생물한적 부모이지만 제 친자식을 정서적으로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학대하고 방치하는 무책임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입양되는 모든 아이들이 내가 만난 아이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항구의 사랑
국내도서
저자 : 김세희
출판 : 민음사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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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이니 이반이니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소설 속의 일들은 내 학창시절에는 없었던 일이라 끝까지 낯설었지만, 작가가 87년생이니까 그 나이 또래에 그런 문화가 있었나 보다. 하긴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대학 졸업 후에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나 술 한잔 마시던 자리에서 요즘 여고생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유행'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어떻게 '유행'이 되는건가 싶었었다. 사람 마음인데 그게 유행한다고 하고 말고가 가능한 일인가 해서... 그때도 나에게 '연애'는 언제나 마음이 100% 기울어야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랬나보다. 어쨌든 나에겐 낯선 배경과 상황으로 가득한 소설이었지만 소설 속 주인공 준희의 사춘기 첫사랑은 어쨌든 애틋했고, 결국 대학에 오면서 사회의 정해진 틀과 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어쩌면 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절을 지나고 이제와 되집어보면 생각보다 대학이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곳이었고 특히 운동권 학생들의 조직 문화는 좀 더 그랬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안에서 그냥 적응하고 순응하며 그 시절을 보낸 사람이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왜 좀 더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좋은게 좋은거다 그러고 살았을까 싶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를 돌이켜보면 당연히 어리고, 미숙하고, 모자란 모습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고3까지 일생 목표가 좋은 대학가기였으니 어쨌든 입학 후엔 그 곳에서 잘 적응하고 어우러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겠지. 어쨌든 소설의 내용은 한 여고생의 첫사랑 이야기였는데, 나는 엉뚱한 곳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많아졌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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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주일만에 맑은 날이다. 올 겨울은 지난 몇 번의 겨울과 비교하면 제법 비가 많은 편이다. 애들레이드는 원래 여름은 해가 짱짱하게 뜨겁고 마른 날들의 연속이고 겨울이 우기인데 지난 몇년 동안은 계절에 상관없이 참 가물었는데 올 겨울은 그래도 비가 꽤 자주 오는 편이라 다행이다. 작년에 호주를 휩쓸었던 산불을 생각하면 사실 땅이 더욱 더 흠뻑 수분을 머금고 있으면 좋겠다. 자주 내리는 비 덕분에 차는 세차하면 바로 또 더러워지고 다시 세차하고 그러다 그냥 귀찮아서 비 그치면 할란다 하고 포기하는 상태이지만... 사실 난 비 오는 것도 좋고, 더운 것 보다는 추운게 좋으니 나는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다. 다만 우리 딸이 겨울이면 늘 감기에 피부 트러블 때문에 고생을 해서 매년 걱정이었는데 올해는 때아닌 역병이 돌아 수영도 쉬고, 대부분의 competition 일정들이 취소되는 바람에 덜 피곤해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만 다음 달부터 수영을 다시 시작해야해서 감기 조심시켜야겠다고 다짐 중이다. 어쨌든 예원이도 평소같으면 일주일에 3-4번씩 저녁 수영을 하고 집에 오면 학교 숙제에 다른 대회 준비 등등에 치여 살다가 요즘은 학교에서 바로 집에 와 숙제하고 그날 그날 본인이 정한만큼 공부하고도 매일 한시간 정도씩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있으니 그건 좋아한다. 그치만 하루 빨리 수영은 좀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

암튼 어쩔 수 없이 집에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밖은 비가 오고 추우니까 집 안에서 책이나 읽으며 소일하기 꽤 괜찮은 시절이다. 이렇게라도 긍정의 기운을 담아야 이 역병의 시절을 잘 버텨낼터이니... 

++

남호주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나오지 않은지 한달 가까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뉴사우스웨일즈와 빅토리아는 매일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호주 전체가 두달 가까이 국경은 물론 각 주의 경계도 꽁꽁 닫고 있다가 남호주 주정부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WA, NT에서 드나드는 경우는 2주 자가격리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걸로 제한을 풀고 퀸즐랜드 주정부와는 협의 중이라고 발표를 했다. 그랬더니 빅토리아 주지사가 공식 브리핑에서 “I don’t want to be offensive to South Australians but why would you want to go there?” 이런 말을 했단다. 이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어찌나 웃었는지.... ㅋㅋㅋㅋㅋ 빅토리아는 노동당, 남호주는 자유당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좀 더 날선 발언을 했겠다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너무 생각없이 내지른 말이었지. 저 주지사가 하고 싶었던 말의 포인트는 내 잘 알겠으나 대중 정치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기자들 앞에 세워놓고 할 말로는 너무 수준이 낮지 않은가? 참... 어디나 정치인들은 다 거기서 거긴가 싶다. 심지어 12살짜리 7학년 꼬맹이들도 웃더라. 

 

Victoria's Daniel Andrews scorned by South Australians after border sledge backfires

Premier sparks deluge of anti-Victorian feeling after openly asking why anyone would want to travel to South Australia

www.theguardian.com

우리나라 정치판도 국회 개원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원구성도 제대로 못하고 있고 (망할 통합당것들...), 북한은 또 왜 저러며..(니들이 일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만 진정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제발 선은 좀 지켜라.), 수세에 몰린 트럼프는 또 똘아이 짓을 할까 난 진짜 계속 불안하다. 아... 진짜 내 인생살이도 쉽지 않은데 세상이라도 좀 이치에 맞게 돌아갔으면 좋겠네. 

+++

2주 전 수요일 아침에 예원이 데려다주고 오는 길, Pool ave.에서 Muller rd.로 들어오는 인터체인지에서 오고 있는 차가 꽤 멀리 있길래 좀 급하게 진입했는데 하필 뒤에 오고 있던 차가 경찰이었다. Stop하고 보고 들어온 거라고 그랬더니 Solid stop이 아니었다나 그래서 벌금 맞았는데 어제 확인해보니 그게 무려 509불이다. 진짜 뚜껑이 열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 내 피같은 생돈 509불.... 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이 속이 쓰리는데 이 기분도 언젠가 좀 지나가려나.... 호주가 범칙금이 워낙 센 나라이긴 하다만 그게 509불이나 낼 일인지 진짜 모르겠다. 암튼 앞으로 더 살살 신중하게 운전하고 다녀야지. 절대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아... 생각할 수록 부르르~~~~

이래저래 여럿이 열 받게 하는 요즘이네. 진짜 확 들이 받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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